『헨리 6세』 3부작이 셰익스피어가 습작기에 썼던 작품이어서 다른 작품, 특히 다른 사극작품들에 비해 완성도가 떨어지고 비평가들의 혹평을 받았다. 특히 『헨리 6세 1부』 는 작가와 창작시기에 관한 문제로 최근까지 비평적 관심을 끌지 못했다. 협동 작업에 의해 쓰였거나 내용에 있어서 여러 가지 모순과 통일성의 결여로 인해 완전히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아니라는 등 학자들 간에 의견이 상충한다. 창작 시기에 있어서는 상식적으로 3부작이라고 하면 1, 2, 3부 순서대로 저술된 것으로 보이지만 2부와 3부를 1부보다 먼저 썼다고 하는 학자가 존재하는 등 여러 설들이 있다. 하지만 현대 편집자들은 이 작품이 셰익스피어의 단독작품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작품의 에피소드식 구성, 단순한 인물 설정, 고르지 않은 스타일 등을 예로 들며 셰익스피어의 초기 작품의 특징을 지니며 습작이라고 주장한다.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으로 런던에서 극작가로서 나름대로 확고한 위치에 서게 된다. 초기작에 습작이라 할지라도 셰익스피어는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자유롭게 조정하고 새로운 사실을 추가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예를 들어 극의 첫 장면은 1422년 헨리 5세의 장례식 장면이지만 1426년 글로스터 공작과 윈체스터 추기경의 다툼이 동시에 이루어져 있다. 또한 이 장면에서 프랑스의 도시들이 함락되고 있다는 소식이 보고되는데 이 중에는 영국이 지배한 적이 없는 곳도 있고 함락 시기도 장례식 시기와 일치하지 않는다. 장미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템플 법학원에서의 싸움은 셰익스피어 새롭게 창작한 것이다. 이렇게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에서 시간이나 연대를 새로 구축하고 새로운 사실을 삽입하는 등 창작가로서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작품설명 중에서
1막
2막
3막
4막
5막
작품설명
셰익스피어 생애 및 작품 연보
오수진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 졸업. 동대학원 영문학과 석·박사
현재 서원대학교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