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는 붉은 장미 문장으로 대변되는 랭커스터 가문과 흰 장미문장으로 대변되는 요크 가문의 왕권 다툼인 장미전쟁(1455∼1485)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1453년, 잉글랜드와 프랑스 사이의 백년전쟁이 종결된 후 약 30년에 걸친 이 장미전쟁에서 랭커스터 가문의 외손인 리치먼드 백작은 요크 가문의 리처드 3세를 물리치고 헨리 7세에 등극한다. 장미전쟁의 후반부와 튜더 왕조의 설립을 담고 있는 『리처드 3세』는 잉글랜드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시기와 인물들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에서 리처드 3세가 된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를 형인 클래런스를 모함하여 죽음으로 몰아넣고 조카들을 살해하고 잉글랜드의 왕관을 쓴 ‘악당’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처드가 드러내는 에너지는 대단히 강렬하다. 리처드 자신의 독백에 따르면, 그는 악당이 아니라 “악당임을 증명하기로 결심한” 사람이다. 자신이 살해한 황태자 에드워드의 미망인인 앤 네빌에게 구혼하는 장면과 ‘억지로’ 왕권을 수락하는 장면에 드러난 위선, 그리고 후에 앤과 자신의 하수인 모두를 버리는 과정은 리처드가 ‘악당’임을 유감없이 증명한다. 그는 연극적인 행동을 통해 주위를 속이고 상황을 장악하여 모든 것을 자신의 페이스로 끌어들이는 악당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구사하는 멋들어진 수사는 우리가 잠시 그가 악당임을 잊게 만든다.

『리처드 3세』가 셰익스피어의 초기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는 그의 천재적 언어 감각이 잘 드러나 있다. 셰익스피어가 제공하는 언어적 성찬과 걸출한 인물 창조를 즐기기를 기대한다.

-옮긴이의 글 중에서